우리들의 대이동
5시 30분, 모두 식탁에 둘러 앉아 씨리얼을 먹고있다. 수저의 움직임이 바빠지는 동안 나는 밥솥 뚜껑을 연다. 점심상황을 알수 없으니 주먹밥 두개를 랩에다 말고 두개의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냉장고에 남은 과일까지 가방에 넣는다.
자! 이제 저 문밖의 오늘의 여정을 위해 긴 호흡만이 필요한 지금, 누구의 배웅도 없는 현관문을 나선다.
졸고있던 거리는 우리들의 움직임에 잠을 깨고 세인트 팬크라스 역까지 계산된 10분을 걷고있다. 제니퍼에게도 주어진 한개의 가방은 벌써 서너번을 길에서 뒹군다. 제니퍼가 우리들의 침묵을 깬다. 아~휴! 힘들어.
오늘의 일정은
1) 런던 세인트 팬크라스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 북역에 도착한다.(A 에서 B 까지)
2) 10일간 우리들의 발이 되어줄 렌트카를 접수한다.
3) 벨기에를 거쳐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까지 약 450 Km 를 운전하는 코스이다. (B 에서 C 까지)
서유럽을 네덜란드에서 시작하여 독일,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마치는 계획인데 유로스타를 타고 도버 해협을 건넌후 파리에서 렌트카를 빌려 파리에서 반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비용(교통비)도 절약되고 제니퍼가 잠시라도 쉴수있게 하기위해 짜인 코스이다.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돈을 절약할수있다면 하루에 이정도쯤의 강행군은 감수 하겠다고 자신만만했던 남편의계획이다.
세인트 팬크라스역은 역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너무나 아름다운건물이다. 들어서니 나는 어느나라 국빈이 된듯 알수없는 관대함과 우쭐함이 솟아난다.
6시가 조금 넘은 역안의 풍경은 기차역도 공항도 아닌 표현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그러나 출국장의 절차 만큼은 여느 국제 공항과 다를바가 없다. 하긴,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탈뿐이지 영국에서 출국하는거니까!
남편은 출국장으로 들어가기전 왼편에 있는 티켓팅머신으로 가더니 신용카드를 넣고 미리 예약한 기차표 5장을 뽑아온다. 남편은 차표 오른쪽 하단에 적혀있는 기차요금을 우울하게 바라본다. 아마도 속이 쓰릴거다. 얼마나 쫀쫀하게 예산을 세웠는지 나는 알고있다.
작년말 여행일정을 짤때,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것은 일찌감치 결정이 되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 바로 신용카드 결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격만 조회를 했을뿐, 표예약은 뒤로 미루어졌고 잦은 여행멤버 교대 때문에도 서둘러 예약을 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출발 2주전 남편이 비명을 지른다. 이유인즉은, 유로스타도 저가항공사들 처럼 일찍 예약 할수록 가격이 싸고 출발일에 가까와 질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것이다. 벌써 가격이 지난번 조회 할때보다 무려 200유로나 (5장 합쳐서) 오른 것이다. 그러나 그 가격에라도 빨리 살수밖에. 아니면 더 올라 갈테니까.
이렇게 이른 새벽기차의 선택은 쫀쫀한 예산의덕이리라. 에이구! 너무 피곤하다.
런던 유로스타역은 1층에 입,출국심사를 하는 곳과 탑승객들을 위한 대기실이 있고 열차 플랫폼은 2층에 있다.
출국 검사장을 무탈히 나온 우리들은 앉을 자리를 찿는다. 멀찍이 카페만이 보일뿐 라운지는 널직하고 쾌적하다. 흠~ 어디에 앉는다? 아! 저기 파워 포인트가 보인다.
라운지 한켠에 여행객들이 컴퓨터나 핸드폰, 게임기등을 쓸수있도록 준비된 벤치가 있다. 파워포인트도 영국용 잭과 유럽용 잭을 골라 쓸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였다. 제니퍼가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탈탈 털은 동전으로 들려진 커피는 잠이 덜깬 우리들의 충혈된 눈들을 달래준다.
7시 22분 파리행 승객을 위한 방송이 나온다. 모두 탑승을 시작 하란다. 그러나 긴장한 우리들의 움직임은 서두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틀전 이곳에 들려 민박집과의 거리를 계산하고 기념촬영까지 모두 끝냈으니까!
무엇으로 6일간의 런던을 기억 하게될까? 영국을 떠나자마자 런던의 6일은 모두에게 추억으로만 남게될것이고 ....에스컬레이터가 무겁게 우리를 실어 올린다.
가방속에 올라탄 빨간색 이층버스, 각종 런던아이콘의 열쇠고리, 윌리엄과 케이트사진이 박힌 차 깡통들은 유럽횡단에 들떠 소리가 요란하다. 쉬~이! 조용히~~~해.
봉쥬~르! 멋진 회색 양복을 입은 중년의 두남자 직원이 우리를 맞는다. 멋지게 생긴 그들의 외모는 프랑스의 환상을 품기에 너무도 충분하다. 그러나~~~
환상을 깨는데는 채 30분도 걸리지를 않는다. 늦은 승차로 짐칸은 이미 자리가 충분하지않다, 남편이 없었다면 쑤셔넣을 공간조차 마련할수 없어 보인다. 결국 두개의 기내가방은 문옆에 세워놓고 객실로 들어선다.
헉! 이건 뭔 세츄에이션! 다섯개 우리좌석에는 벌써 누군가 이미 앉아 있는게 아닌가! 그들은 더블 북킹이 된거라는 설명과함께 미안한 기색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우리를 보살피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찿을 수가없다. 그저 억수로 운이없는 여행자라는 동정의 눈길만이 좁은 복도로 그득하다.
어쩐다! 아무대나 앉자는 남편의 제안에 나의목소리는 날카롭게 올라간다. 이건 유로스타다, 오십이 넘도록 들어만 보던 기차가 아닌가! 아니, 이건 내게 그이상의 의미(호화 기차여행) 이기때문이다. 난 유로스타 직원들에게 완벽한 서비스(늦은 예약으로 요금도 두배를 냈으니)를 받아야 하며 지금의 이 불편해진 상황에 대한 사과 까지도 받아야 한다. (이 불편한 심사는 내 오랜 외국 생활에서 오는 소수 민족의 열등감 같은 것일수도 있다, 그래서 난 잘따지고 부당한건 절대 못참는다)
우리들은 바로 전 기차를 놓친 흑인 여자와 다섯살쯤 되어 보이는 그녀의 두 아들과 짐칸에 서서 지나가는 직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직원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서로의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처음 만났던 금발의 멋진 직원이 나타난다. 우리들의 설명은 충분했고 직원은 기차가 떠나고 5분 뒤에 오겠단다. 아유! 뭔가 보상 받는 기분에 잠시 나의 흥분을 가라 앉힌다.
기차는 떠나간다. 멋지고 우아하게 런던의 배웅을 기다리던 나의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단지 표 없이 무임승차한 꼴로 짐칸에 서있는 다섯명의 아시안들일 뿐이다. 이 와중에도 흑인 여자는 이상황이 온전한 자기몫인양 유리창 넘어로 객실을 기웃 거리더니 이내 빈자리를 찿는게 아닌가!
본능적으로 우리들의 몸도 빨라진다 자리를 찿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 아까 객실을 나오면서 보았던 4명이 마주앉는좌석, 아직도 비어있다. 맞은편에 앉은 흑인여자는 눈으로 말한다.
"거기 앉아서 가면 되요. 먼저 앉는게 임자 이거든요" 라고. 고맙다는 눈인사가 오고 가고 객실의 눈들도 낯선 여행자들의 되찾은 운에 안도한다.
기차가 달리기를 시작한지 오래다. 자리주인이 타게 될까 불안한 마음이 드는 동안에도 오분뒤를 약속한 직원은 어디에서도 볼수가 없다.
몇개의 터널을 지나친다. 순간 너무도 길게 지나가는 터널, 아! 이게 해저 터널 이구나! 이제 곧 프랑스 영역이다. 남의 자리에 앉아 가는 불편함을 드넓은 유채꽃 벌판과 간식과 음악으로 삭혀갈 즈음 ..
아까 오분뒤를 약속한 직원이 지나간다,무언가 한마디의 언급을 기대한 나는 그와 눈을 마추기에 집중하고 그는 우리 일행을 본적도 없다는듯이 우리를 지나친다. 헉! 기가 차다
억울하다 그리고 슬퍼진다. 우리가 얼마나 기대하고 고대하던 유로스타였는가! (주저없이 욕 한마디가 튀어나온다)
이제 내게는 3등열차 비둘기호가 되어버린 유로스타. 뒤도돌아봄 없이 역으로 들어선다.
자! 역을 둘러보자. 파리 북역이다. 왜 이리 어수선하고 낯설까?
남편이 렌트카 회사를 찾을 동안 우리딸은 환전을 하고 길씨와 제니퍼는 화장실을 간동안 내가 만난 두명의 파리지앵. 어처구니가 없다. 물론, 세상 어디에도 집이없는 사람들(거지)이야 있게마련이지만 이들의 외모는 지나치다. 오물로 얼룩진 남자와 아주 작정하고 여행자의 동전을 구걸하는 여자. 게다가 이남자는 가방을 지키고 있는 내옆에 앉아 몇마디 불어 까지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불편한 나의 심사는 두통으로 바뀌고 남편을 기다리는 시간은 이미 내 인내심을 넘어선지 오래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이제 유로스타의 푸대접은 마음에서 사라진지 오래고 남편의 고집으로 빌리게된 이 렌트카로 네델란드를 가야 하는데....마음이 온통 레트카로 복잡하다.
남편은 어디를 헤메이다 온건지 웃음으로 자기의 과실을 대신하며 우리앞에서 다시 사라진다. 렌트카 회사는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의자 앞 지하에 있는게 아닌가!
두통이 약이 필요할 만큼 지끈 거릴때 길씨! 점심을 걱정한다.
점심꺼리를 사러 카페를 다녀온 길씨! 으악한다. 파운드가 유로로 바뀐 우리들의 화폐단위, 역에서의 점심을 생략 하기에 충분하다.
한 프랑스 남자와 남편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내 사라진다.
남편이 둘러본 북역 밖깥쪽. 왜 둘러봤을까?
렌트카 직원에게 받은 주차장 주차권.
남편은 우리를 데리고 6층 지하 주차장으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내려간다. 이곳에 우리들과 열흘 동안 함께할 푸죠 7인승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짐을 싣기에 넉넉한 공간이다.
모두 차에 앉아본다. 모두가 대 만족!
렌트카 직원왈! 이곳에서 나가서는 식구들을 태우기가 어려우니 지하에서 같이 출발 하라고 했단다. 이뜻은 저 바깥세상은 우리가 상상할수 없이 복잡한가보다.
남편이 지도를 살피고 네비게이션을 작동해보는 동안 나는 부지런히 점심을 준비한다. 차는 등받이에 간단히 펼칠수 있는 접이식 테이블도 있으니 식사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동안 괄시받던 길씨의 보물창고 트렁크가 열린다, 일회용 인스탄트식품으로 가방 한가득이다. 스프, 누릉지, 블랙 퍼스트 시리얼 바, 과자, 햇반, 고추장, 김, 참치캔.... 입맛대로 고를수 있다. 이정도면 유럽정복은 시간문제다.
오늘 점심은 뜨끈한 스프와 민박집에서 가져온 주먹밥. 시장이 반찬이고 시간도 절약한 남편, 드디어 부릉이(남편이 지은 렌트카 애칭) 에게 시동을 걸어준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지하세계를 나선다.
남편은 지하를 빠져나온후 미스김(내가 지어준 네비게이션의 애칭)의 영어안내대로 좌회전, 우회전을 반복한다. 어딜까? 이곳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 시장을 지나가고 복잡한 시내 차선을 들어설때. 이미 우리는 불안해 지기 시작한다. 남편과 미스김은 따로 또 같이!
차가 복잡하지 않은 지상의 마지막 낙원에서온 남편, 네비게이션을 써 본적이 없다.
네비 화면과 미스 김의 목소리는 서로 일치가 않되고 남편은 그걸 읽지 못하고 있다.
일단 차를 도로옆에 세우고 이 대략난감을 해결해야 한다. 운전에는 자신있는 길씨! 보모의길을 포기하고 운전석 보조로 들어선다. 네비를 다시 입력하고 출발한다. 얼마를 달리기는 한것 같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올라타야할 우리차는 또다시 주택가로 들어선다. 멀리 차들이 빠른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어떻게 저 위에 올라선다? 또다시 목적지를 입력 한다.
지금은 벌써 2시가 넘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파리 외곽 주택가를 돌고있다. 그때 제니퍼의 목에 걸린 핸드폰으로 전화벨이 울린다.( 한국에 있는 식구들은 오늘의 대이동에 촉각을 세우고 있으리라 ) 제니퍼의 엄마 하하씨다.
거기 어때 하며 안부를 묻는 하하씨! 그러나 내가 할수있는 말 "오늘 우리 네델란드에 도착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벌써 한시간을 넘게 파리를 헤매는 중이거든!" 하하씨 말이없다 소심한 그녀가 무얼 생각할지 ......하하씨 만큼 나의마음도 복잡할즈음
어! 도로는 끝이없고 우리는 쭉 뻗은 같은길을 한시간 넘게달리고 있다. 이제 표지판이 달라지고 도로를 달리는 화물차의 글씨도 달라져 있다. 야~~호! 드디어 성공적으로 고속도로를 올라탄것이다. 두번의 통행료를 내며 차는 벨기에 국경을 넘어 네델란드로 들어선다. 그냥 달리던 도로를 계속해서 달릴뿐 어디에도 국경검문소는 눈에 띄지 않는다.
남편이 자랑스럽다. 정말 최고로 인정하고 싶은 순간이다. 여보! 잘했어~~~~~~요.^^
땅보다 낮아보이는 두개의 터널을 지나고 멀리 하얀색 풍력발전기들이 돌고 있는지금 이시간, 튜울립과 풍차의 나라를 감상하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다.
이방인을 맞이하는 로테르담의 거리는 벌써 저녁노을이 가득하고 우리들의 눈은 태어나서 처음보는 이 낯선 도시를 두리번 거리기 바쁘다.
미스김은 목적지가 바로 앞이라고 악을 쓰지만 남편의 부릉이는 엉뚱한 길을 들어서고 나가기를 서너번....
아! 드디어 오늘밤 지친 우리의몸을 뉘울 유로 호텔이 보인다. 어! 그런데 저기 호텔 맞아?
우리는 가방 하나씩은 차에 두고 내리기로 한다, 어차피 하룻밤만 묶을 곳이니까.
운이 좋게 부릉이도 우리가 묶는 호텔 바로 앞에서 고단한 하루를 쉬고있을즈음.....(아침 9시에는 차를 빼야한단다)
자! 호텔을 둘러보자.
엘리베이터부터 상식을 벗어난다. 방문같은 오래된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에 들어서고 문을 닫고 올라가고 방문 같은 엘리베이터를 다시열고 내리고 도대체 얼마나 뒤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해야할지 모를 기계가 이곳의 첫인상이다.
방으로 들어선다. 찬찬히 기물을 점검하던 나는 왕 실망이다. 상식적인 커피포트가 눈에 보이질 않는다. 그럼 어떻게 저녁을 해결한다. 오면서 변변한 쇼핑몰도 보이지를 않았고 밖은 이미 너무 어둡다. 지친몸은 울고 싶어지기 까지한다. 나의몸은 지금 쓰러질 지경이다.
호텔 리셉션을 다시 내려가 뜨거운 물을 얻을수 있는지 물어본다, 아니 이친구왈! 이곳 식당에 내려와서 식사를 해도 된단다. 어차피 물은 이곳 식당에서 받아가야 하니까 거절의 이유가 없다.
죽~ 풀러놓은 우리들의 저녁, 튜부식의 된장과 콩자반 한캔, 그리고 햇반. 우리들의 저녁식사가 시작되는 아주 작고 예쁜 식탁위에는 부족한 반찬에 보태라는듯 부활절 장식계란이 탐스럽다.
밤새 이침대가 좁은줄 모르고 이방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길씨와 제니퍼 그리고 우리딸
벌써부터 일어나 하루일정을 점검하는 남편
호텔 전화기가 머리를 말릴사이없이 바쁘게 울린다.
엄~~마! 아침이 뭐예요.